목양 자료

목양 자료

특새(1) 성도의 필수: 성령 충만에 대한 목마름(행2:29-33)

작성자
손민석
작성일
2015-12-07 23:53
조회
1604
[1] 성령 충만

누가가 가장 많이 사용(사도행전 10회, 누가복음 4회); 바울은 1회 사용(엡5:18). 누가의 용례를 보면 특별한 성도가 아니라 일반적 성도들에게 믿음의 역사가 일어날 때 사용한 용어입니다..

- 스탠리 존스 “인도의 길을 걷고 있는 예수”의 저자.

“오순절 성령충만은 어떤 영적 사치가 아니라 인간의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인간의 영은 성령의 충만 없이는 실패한다.” 인간의 영은 성령 충만이 없이는 패배할 수 밖에 없고, 죄의 세력을 극복할 수 없고, 그리스도의 풍성한 생명을 누릴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 Charles Finney (20c 중반의 부흥사) “세상은 성령 충만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불평할 권리가 있다. 세상은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을 보기 원한다.”

? 신자의 실패는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는 데에서 옵니다. 죄 속에 빠지고 거룩하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성령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본의 아니게 하나님께 반역하며 살게 된다다는 말이며, 빌리 그레함 목사도 성령 충만하지 않은 것은 엄히 경계해야 할 죄악이라고 했습니다.

- 현대 교회의 문제: 성령 충만이 마치 높은 선반 위에 올려져 손에 닿지 않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은 자신의 삶과 모습이 심각한 영적 위기이며 죄라고 생각하는 교인들이 얼마나 될까요? 대부분 충만하지 못한 상태에 안주하고 있는 것이 깊은 문제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2] 누구에게 필요한가?

- 성령 충만이란 누구에게 필요한 것입니까? 영적으로 갈급한 교회에 가장 필요합니다. 성령 충만이란 우리의 신실함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이 아니라 우리의 실패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영국의 로이 헤슨 목사는 말했습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우리에겐 필요한 모든 것이 있고, 환경도 좋고, 교회도 꽉 차고, 활동도 많이 하고,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이 정도면 괜찮다고 하는 교회가 아니라, ‘많은 것이 채워지고, 모든 것이 좋게 보여도, 주님에 대한 목마름이 채워지지를 않습니다. 우리의 목마름을 채우소서…’ 라고 진실하고 겸손하게 간구하는 교회에 성령 충만은 필요한 것입니다. .

성령 충만의 하나의 조건이 있다면, 자신을 부자격자로 시인하는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부자격자로 말하기를 매우 꺼려합니다. 예를 들면 예배를 드리고 은혜를 받았다면 내가 자격자가 된 것으로 자연스럽게 생각합니다. 내가 기도해서 무언가 이루어지고 얻었다면 내가 자격자가 된 것 같은 생각에 안주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적 목마름을 방해하는 가장 큰 영적 결함입니다.

- 성령의 충만에 대한 목마름은 채워질수록 더욱 목이 마르게 됩니다. 왜냐하면 지금 채워진 역사는 더 큰 하나님의 역사를 향해 들어가게 하는 입구였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정도 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처럼 위기가 없습니다(고전10:13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이 목마름이 채워질 때 우리는 조급해지고, 불안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신뢰하게 되고, 더욱 주님 안에 침잠하기를 원하고 겸손한 자세가 생기게 됩니다. 이러한 영적 미케니즘이 반복되어 익숙해지고 습관화되어 항상 목마르게 해달라고 구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때 내게 새롭게 형성되는 성령의 성품이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입니다, 인내, 온유, 절제, 충성, 기쁨 등…(갈5:22이하)

[3] 오해

- 성령 충만은 내가 무엇을 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미 임한 엄청난 성령의 활동적 역사를 내가 제한하고 막아서지만 않으면 됩니다. 본문 베드로의 설교에 감동한 수 천명의 성도들은 부어주시는 성령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성령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주님 하시는 일을 내가 방해할 리가 없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면 그는 성령 하나님에 대해 아직 잘 모른다는 뜻입니다.

존 오웬 (청교도 신학자, 목사) “신약시대에 하나님을 섬기던 유대인들이 성자 하나님을 배척했다면, 교회시대의 신자들은 성령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다”

성령을 근심케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것이 비디오 되감기를 하듯 교회 역사와 나의 삶 속에서 되풀이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도 영적 둔감 가운데 내가 무엇을 잘못 하는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은 무슨 일을 하시길래 우리는 그분의 일을 지극히 제한하고 있습니까?

박영돈 목사의 “성령 충만, 실패한 자를 위한 은혜”에서.

“성령은 무한한 인내와 긍휼을 가지고 말씀을 통해 신자를 끊임없이 설득하며, 책망하고, 경고하며, 굳게 닫힌 마음 문을 계속 두드리신다. 더불어 그의 비상한 관심과 섭리 가운데 신자에게 임하는 모든 외적 환경과 사건들을 그의 영적 회복을 위해 기여하도록 운행하신다. 그리고 이런 사건들 속에 성령이 친히 함께 하셔서 그가 당한 환난을, 신자를 깨우치며 낮추고 돌이키는 은혜의 기회로 삼으신다. 성령은 환난의 폭풍우 속에서 ‘메가폰’으로 말씀하신다. 이런 성령의 역사하심 없이 고난 자체만으로는 신자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한다. 고난의 불과 후폭풍 속에 성령이 함께 하기에 고난은 결국 신자의 영적 유익을 도모하는 방편이 된다.”

- 우리가 너무 쉽게 영적 즐거움을 맛보려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적은 은혜로 만족하고 충만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 정도면…’ 자족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계속하여 성령 충만이 일어날 수 있는 목마르고 가난한 자의 심령의 상태가 유지될 수 있기를 기도해야겠습니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