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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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새(5) 성령: 창조와 구속의 영(창1:2; 롬8:18-27)

작성자
손민석
작성일
2015-12-07 23:56
조회
1317
어제 말씀 드린 삶을 긍정하고 사랑할 수 있는 길은 표면 세계에 머물지 않고 본질에 대한 발견으로 교통하면(서로 통하면) 열린다고 했습니다. 삶의 본질은 100%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면 어떤 분은 이 세상에는 악한 것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어떻게 선한 것만 있다고 말하냐고 물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인간과 피조 세계에는 악한 세력이 기승을 떨지만 악한 본질을 창조하진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삼위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일어날 때 악은 개입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창조된 피조물들은 선하고 아름다운 속성을 갖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선한 창조의 역동적 힘이시며 파괴된 인간과 피조계를 구속하시는 영이십니다. 오늘은 이 주제를 간략하게 다루겠습니다.



[1] 창조의 영, 성령



창1:2을 보면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여기서 영(루아흐)이란 성령을 지칭합니다. 다른 구절에서는 숨, 호흡이라는 뜻, 바람, 정신적 태도를 가리키는 말로서 생기, 활력, 기질, 용기 등의 뜻이 있습니다. 이 다양한 뜻들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역동성입니다. 선하고 아름다운 역동적 창조의 근원이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언급했듯이 삼위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은 선하고 아름다운 속성을 지니게 됩니다.



만일 창조의 본질 세계가 선함과 악함으로 나뉘어져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를 이분법적으로 잘못 이해한 것(이 말은 이 세상에 선한 하나님과 악신이 둘 다 존재한다는 모순에 도달한다)입니다. 이 세상에 악한 세력은 거짓말로 인간의 눈과 마음을 왜곡시킨 것이지, 결코 본질 세계를 악하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창3장부터 등장하는 악한 세력(마귀, 사단)은 인간이 창조의 선한 본질의 가치를 보지 못하게 거짓으로 유혹한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부여된 본질을 잘 누리면 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 거짓에 속아서 피조물의 본래의 선한 가치를 못 보고, 자신들이 부끄럽게 느껴져서 자신의 상황에서 절박하다고 느끼는 나뭇잎 치마를 만들어 입기에 정신이 팔렸습니다(당시 주변 상황은 바뀐 것이 없다. 오직 그들의 눈이 불필요하게 밝아져서 부끄럽지 않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게 된 것 뿐이다). 나뭇잎 치마는 자신의 삶을 보호하려는 표면적 장치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들은 본질로부터 오는 풍요를 누리기는커녕 그것 밖에는 없는 것처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왜곡된 인간이 피조계 안에서 살면서 내적 외적 타락으로 말미암아 피조계를 오용하고 무시하며, 오직 자신들의 이득과 탐욕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만 피조계에 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인간의 손이 닿는 곳은 질서의 불균형과 파괴가 일어나고(삼림을 베어가니 생태계가 파괴), 마땅히 사랑의 수고로 다스려야 할 땅은 버려두니, 그 영역과 악영향이 커지기만 했습니다. 이 상태에서 피조계는 가만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피조계는 하나님의 아들들(피조계의 진정한 관리자)이 나타나기를 원하고, 고통하며 탄식하며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고대한다고 했습니다(로마서 본문).



[2] 피조계의 회복을 위해 인간 몸의 구속을 간구하시는 성령



그래서 성령 하나님은 인간을 구속하시기 위할 뿐 아니라 피조계의 창조 질서로 회복을 위하여 우리 몸의 속량을 위해 간구하신다고 했습니다. 어떤 목적에서이겠습니까? 인간은 회복되어서 인간 사이에, 또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통하게 할 뿐 아니라, 인간과 피조계 또한 통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서로 통할 때, 힘을 얻고, 서로를 세워줄 수 있으며, 하나님 나라의 생명의 특징들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서로 통해야 살 맛이 나는 법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자연을 사랑하든지, 사회와 국가를 사랑하든지, 예술과 체육을 사랑하든지, 교통하게 하시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창조도 피조물 하나의 개별적 존재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가 선하고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의 역동적인 교통이 일어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아름답게 열매 맺어가는 과정 중에 뚜렷이 드러나야 할 특징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과의 교통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교통하는 피조세계가 성령의 운행 속에서 더욱 성장하다 보면 우리가 맛보게 되는 매우 소중한 하나님 나라의 특징이 있습니다. 온전한 조화 속에서 누리는 샬롬(평강)입니다. 평강은 소극적이고 정적인 개념의 단어가 결코 아닙니다. 평강은 모든 것들이 선하게 교통하여 온전함을 이룬 상태입니다(말만 통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목적과 방식 모두가 통하는 상태). 평강은 하나님 나라의 차원에서 매우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차원을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생명은 바로 이 평강 상태에서 온전하여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의 삶에서 부분적이고 짧게라도 계속 맛 보는 축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의 궁극은 성령 하나님이 간구하시는 피조계와 인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평강(샬롬)임을 확신하며, 오늘 성령께 전적으로 의탁할 수 있게 됩니다.



<맺음> 성령 하나님은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당신의 운행하시는 방법이 교통이시며, 모든 피조계가 하나님과, 그리고 서로 간에 교통하도록 이끄시는 영(힘)이십니다. 궁극적 목적은 이 교통의 상태가 최고점에 이르러 영원히 지속되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께서 나의 삶에, 공동체의 여정에 감동 속에서 교통하심이 넘치도록 역사하시기를 기대하시고,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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