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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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자를 찾으시는 예수님(1) "삶에서 잃어버린 중심"

작성자
손민석
작성일
2015-12-07 23:30
조회
2304
본문: 눅15: 8-10 “우리가 삶에서 잃어버린 중심”
- 이번에 6회에 걸쳐서 나누고자 하는 것은, 어제 설교에서 언급하였듯이, 주님께서 잃은 자를 찾으실 때,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보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새 백성으로 인도하신다는 영성의 회복에 관한 것입니다. 매일 아침 누가복음 본문들을 통해서 하나씩 살펴보면서, 기대하기는 자신 안에 잃었던 것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라면서, 이 시간에는 가장 원리가 되는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 누가 복음서에는 비유가 많이 나오는데, 잃어버린 것에 대한 소재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결국 자기 소유를 다 잃게 됨); 약은 청지기 비유(주인의 것을 탕진하고 꾀를 부림); 부자와 나사로; 과부의 간청을 들어주는 재판관 비유(과부가 억울하게 잃은 것을 찾아줌); 잃은 양 비유, 잃었던 아들 탕자 이야기; 스승을 잃고 엠마오로 향했던 두 제자… 이 모든 비유는 잃은 것을 소재로 말하고 있습니다.
눅19: 10은 누가복음의 가장 핵심이 되는 요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여기서 잃어버린 자란, 믿지 않는 사람들만으로 단순하게 볼 수 없습니다. 깊은 의미에서, 우리가 신앙을 가진 후에도 무엇을 잃고 있는지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 오늘 본문은 유명한 드라크마 비유입니다. 이 비유 속에서 여인에게 은전 한 개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은 삶의 중심을 잃고 온전성이 깨어진 상태임을 알게 합니다. 열이라는 숫자는 인간의 전체성, 온전성을 상징합니다. 드라크마 열 개를 지니고 있는 사람은 온전하고, 통합이 잘 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를 잃어버렸을 때, 이 하나의 의미는 단순히 열 개 중의 하나가 아니라, 열 개 중에 중요한 하나, 즉, 중심이 되는 하나를 말합니다. 곧 열 개 중 그 어떤 것도 모두 중요한 중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여러 개로 구성된 유기체에서 하나의 중요성은 매우 큽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장기 중에 하나가 크게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는 다른 건강한 장기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온전한 건강을 지키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이 비유는 하나를 잃으면 전체를 잃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드라크마 하나를 잃으면 9개는 본래의 가치를 잃게 됩니다. 즉 비유에서 여인이 한 드라크마를 잃었다고 하는 것은 자기의 중요한 어떤 것, 성품적이라든지, 정신적이라든지, 관계적이라든지, 영적이라든지, 어떤 것 하나가 손상되거나, 또는 하나를 잃게 됨으로써 자기 자신을 상실한 것입니다.
- 비유 속의 여인은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기 위해 두텁게 쌓인 먼지를 다 털어냈고, 가구들을 들어냈습니다. 이것은 나의 진정한 내면을 분리시켰던 많은 방해물들과 불필요한 것들을 치워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잃었던 드라크마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이웃을 불러 놓고 잔치를 엽니다. 자신의 중심을 찾으면, 즉, 잃었던 자기를 찾으면 주변 사람들과 기쁨과 환희의 관계로 새롭게 형성됩니다. 이것은 잘 통합된 온전함으로 가까이 갈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여기서 인간은 자기를 찾았고, 동시에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온전성에 이르는 것이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고, 그 뜻을 가진 하나님이 먼지와 어두움 속에 갇혀 있던 자신을 발견하도록 성령의 빛을 비추어 주시며 당신이 누구신지를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 자신을 발견한다는 의미를 조금 더 자세히 말씀 드린다면 이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인간 안에 만드신 본디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화려한 내가 아닙니다. 능력을 발휘하고 능숙한 기술을 가진 내가 아닙니다. 멋져 보이고, 겉모습의 매력이 담긴 내가 아닙니다. 매우 단순하고 수수하고 전혀 인위적이지 않은 나를 말합니다. 식물에 비유한다면 씨를 발견하는 것이고, 씨로부터 생성되어 땅 깊숙히 뻗어가는 뿌리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발견되는 나는 결코 완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씨와 같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씨의 형태로서 발견된 자신을 소중히 여기면서 남은 인생의 길에서 많은 사건들과 많은 단계들을 지나가면서 하나님의 양육에 맡겨 드리면, 이 씨는 결국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게 될 것을 약속 받습니다.
이 씨가 미완성이라고 해서 이를 무시하고, 감추어 놓으면, 이내 위축되고, 억압 당하고 갇혀서 자라지 못하게 됩니다. 이 씨는 인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나를 새롭게 계속해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많이 열리게 되는데 그것이 내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일입니다.
- 오늘 비유의 마지막 구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누가는 드라크마 한 개를 발견하는 이야기 속에서 회개하는 죄인을 보고 있습니다. 죄인이란 자기 자신을 잃은 사람입니다. 죄인이 회개한다고 할 때, 회개의 뜻은 ‘마음을 바꾸어 다르게 생각하다’ ‘나중을 인식하여 사물의 배후를 보다’는 뜻이 있습니다. 회개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이제 다르게 생각하게 하고, 자신과 세상의 더 깊은 배경을 볼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참된 자기를 발견할 수 있는 길이 됩니다.
- 내 자신 안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영원히 발견하지 못하면 우리에게 무슨 소망이 있을까요? 내 안에 감추어진 위축된 나의 미숙하고 수치스런 헐벗은 자아가 남에게는 물론 나에게도 드러나지 않으면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 위로입니다. 내면 깊이에는 평강과 소망이 하나도 없는데, 겉으로는 평강하다, 잘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의 다양한 기회(특히 부정적인 사건들: 실망, 고통스러움, 오해와 상처 등)가 올 때마다 자신을 한층 더 깊이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자기가 잃은 것을 찾고 그것을 내 인격과 삶의 중심으로 여기면서 가치를 부여할 때, 나는 온전함에 한 발짝 가까이 가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주님과의 새로운 만남, 이웃과의 새로운 만남이 일어나 삶에 환희와 기쁨이 솟게 되는 것입니다.
<질문>
내가 내 안에 무엇을 잃어버려 방치해 두었는지, 평상시 때는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허무함이나, 고통스러운 아픔이나, 큰 슬픔이나 분노 등의 사건들이 일어날 때, 본문의 여인과 같이 먼지를 털어내고, 가구를 들어내는 작업을 통해 나의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성령의 조명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도우시고 위로하시는 체험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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