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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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오신 예수님(53)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요1:12-18)

Author
관리자
Date
2018-10-02 20:33
Views
470
<도입>

지난 시간 그리스도로 오신 로고스 하나님을 세상이 거절했음을 살폈습니다. 그분을 거절한 이유는 예수님의 자기 인식과 사람들의 예수 인식과 괴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거의 모든 복음서 기사에 나타납니다. 이 부분을 좀 더 다루고, 은혜와 진리의 충만의 문맥을 살피겠습니다.

[1] 자기 인식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기 인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에 대해 정직하고 바른 인식을 갖는다는 것은 빛이 비추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쉬운 일도, 저절로 되는 일도 아닙니다. 어떤 남자가 왕자라는 자기 인식을 버리지 못하면 가정은 불행해질 수 있습니다. 난 괜찮은 사람이라는 왜곡된 자기 인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살 때에 이 왜곡 위에 옷만 바꿔 입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을 시작했는데 자기 인식이 믿기 전과 똑 같으면 신앙이라는 옷만 갈아 입습니다. 종교적 치장입니다.

사람의 타락의 한 특징은 자기 인식의 왜곡입니다. 이 자기 인식이 빛에 맞닿지 않고, 빛의 색깔만 자기 위에 입히려고 하면 모양은 신앙인인데, 빛과 만남은 없고 자신이 어둠인 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빛을 어떻게 만날 수 있습니까? 빛 되신 주님을 액면 그대로 만날 수 있게 하는 예수님의 자기 인식에 대한 말씀의 선포 속에서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이다’, 자기 정체성을 드러낸 말씀들, ‘아버지께서 보낸 자’(8:42), ‘내 말을 들으면 영생을 얻음’(5:24), ‘나와 아버지는 하나’(10:30), 등. 또 정죄하시지 않는 분,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 약한 자들에 대한 동정과 사랑을 가진 분, 죽기까지 친구가 되신 분… 이 분을 말씀 속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나를 깜짝 놀래키며 만나주시는 것처럼 확실한 체험을 말하는 것(Paul Tillich).

예수님이 내게 빛으로 비추실 때 나는 자기 인식의 핵심을 보게 됩니다. 나는 어둠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때는 누가 말 안해주어도 압니다. 내가 어둠인 것은 슬픈 일이지만 빛을 붙들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 때문에 새 삶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든 그 후로 빛 되신 그분과 어둠으로 드러난 자신과의 만남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왜곡된 자기 인식의 신앙의 틀 안에 정체되지 않습니다.

[2] 육신이 된 말씀

빛과 어둠의 만남의 축복은 더 나아갑니다. 14-16절(읽음). 예수라는 빛은 인간 몸을 입은 육신에서 나타났습니다. 이 빛의 드러남을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이 영광을 보았는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합니다. 참됨의(거짓없는) 충만한 진수를 보았다는 뜻입니다. 은혜와 진리를 따로 표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신 예수 안에서 참 진수를 그분 말씀과 성품과 행동 속에서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17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라” 모세와 예수를 대조합니다.

이 영광을 우리가 다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라고 말합니다(16절). 이것은 독자들이 복음서를 흥미롭게 읽게 만드는 동기가 됩니다. 예수님 안에 참이 충만하다는 데서 끝나지 않고 영광을 우리가 받는다고 말하면 ‘어떻게요? 내게도 가능합니까?’ 라는 질문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3] 요한복음과 21세기 우리들

20:31예수께서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서론은 세상이 빛을 거절 했지만 당신이 걸어간 십자가를 통해 영광을 보게 하고 믿는 자에게 그 영광을 받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대에 사는 우리들이 가져야 할 진지한 신앙의 삶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나는 어둠임을 보는 것입니다. 어둠에 빛이 찾아 오면 그것을 붙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붙들지 못해서 예수님의 참 생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이 가짜라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진리 됨(참됨)에 들어가기 위해 구하는 자로서의 여정을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자신이 어둠임을 인정하고 자신에 대해서 만큼은 철저하게 좌절해야 합니다. 좌절했지만 예수의 빛을 아직 붙들지 못했다면 때가 남았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잃어버려진 상태에서 예수의 빛을 붙들기를 기다리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영적 어려움이 표출됩니다. 그러나 바라는 것은 이런 과정이 결코 헛되이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맺음>

매일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어느 날 깊이 만나고 그분 안에 있는 진리(참)의 충만을 고백할 때, 그 충만은 우리가 다 받기까지 허락된 은혜 위에 은혜입니다. 이러한 기회가 남아있는 것이 희망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충만(참됨)이 우리의 충만이 되는 그것을 함께 바라보고 격려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나눔의 질문>

  1. 서론(1-18절)을 보면서 복음서를 읽는데 어떤 주제로 초점을 모으게 합니까? 지난 시간과 오늘 함께 살핀 내용을 생각하면서 나누어 봅시다.

  2. 요한복음의 목적(20:31)이 우리 삶에 어떻게 이루어지며 주님은 우리가 어떤 축복을 얻을 수 있게 하실까요?

  3. 모든 사람의 삶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것을 남과 비교하여 내 것은 견딜 만하다고 여기기보다는 예수님 앞에서 내게 얼마나 무거운 어둠인지를 고백할 수 있다면 나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붙들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인생에서 예수님을 이와 같이 붙든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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