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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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큰 숲 보기 (31) - 요나 : 어찌 내가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욘4:10-11)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1-27 16:36
조회
289
요나서는 하나님의 본심을 드러내는데 최종 목표가 있고(4:11), 주님의 본심을 만나고 인정하는 일은 요나와 우리 모두가 받는 요청임을 알게 합니다.

[1] 요나서 – 영적 여정의 길

요나서는 하나님을 믿는 인간이 하나님을 향한 인생의 영적 여정을 비추어 줍니다.

(1) 소명: 요나를 부르심(1:2)
(2) 거부(1:3)
(3) 고난과 역경(1:4-17) – 풍랑을 만남
(4) 회개(2:1-9) – 주님을 바라보겠다는 결단
(5) 재소명(3:1-2)
(6) 새롭게 열린 삶의 장(3:3-10) – 사역의 성공
(7) 분노와 좌절(4:1-9) – 하나님의 말씀(4:4, 9) à 여전히 완고함
(8) 하나님의 본심의 표출(4:10-11)

요나는 하나님을 잘 안 사람이었습니다. 사역으로 부르시고, 풍랑도 일으키고, 자기 몸이 드려지면 폭풍이 잠잠해질 것도 알았습니다(1장). 물고기 배속에서 참 회개하며 언제나 주님의 성전을 바라보겠다고 합니다(2장). 다시 니느웨를 향한 부르심에 응합니다(3장).

또한 주님의 심판 메시지를 전하자 니느웨 온 성이 회개하는 모습을 보고, 이럴 줄 알았다며, 주님은 은혜로우셔서 재앙을 거두실 분임을 알았다고 말하며 원수들의 회개에 분노합니다. 얼마나 주님을 잘 안 자입니까? 우리도 요나와 같은 과정을 거칠 때 주님의 은혜를 고백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삶과 사역이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내 이럴 줄 알았다’는 게 인간의 결론입니다. 살면서 부르심에 응하고, 회개도 하고, 성공도 했는데, 결국 이럴 줄 알았다. 자기 한계를 넘지 못합니다. 그리고, 4:9 ‘성내어 죽어도 그 죽음은 옳다’고 우기는 본성을 만나게 됩니다.

요나서는 주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 주님의 은혜가 나의 기쁨이 되는 것이 얼마나 깊이 본성에 거스르는 일인지를 지적합니다. 또한 창조 회복의 큰 그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어떻게 참 소명의 사람이 될 지를 고민하게 합니다. 믿는 자라도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 은혜를 충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인간의 본성과 하나님의 마음을 만날 때

요나의 본성을 대표적으로 나타낸 것이 분노입니다. 요나는 종종 분노의 우산을 들고 그 그늘 아래에서 산 사람입니다. 혐오하는 원수들은 멸망 당하지 않으니까 분노합니다. 사람이 분노할 때처럼 자기 생각이 옳을 때가 없습니다. 무서운 본성입니다. 그런데 분노만 무서운 본성일까요?

어떤 사람은 두려움과 불안의 우산을, 어떤 사람은 조정 욕구의 우산을 쓰고 삽니다. 어떤 사람은 부정적, 비관적 우산을, 어떤 사람은 우울과 실망의 우산을, 어떤 사람은 비판과 판단의 우산을 쓰고 삽니다. 이러한 본성은 주님의 은혜와 은혜 받고 변화된 사람을 전적으로 긍정할 수 없게 합니다. 물론 인간 본성에는 부정적인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타락 후에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긍정적 요소도 남아있음) 부정적 본성이 훨씬 압도적으로 상황을 지배합니다.

요나서는 인간의 이러한 실상을 보여주면서, 요나를 품으시며 인격적으로 대하시는 주님을 증거합니다. 본서에는 주님께서 직접 하시는 말씀이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1:2, 3:2 ‘니느웨로 가라’; 4:4, 9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410-11). 주님은 분노하는 요나를 징계하거나 버리시지 않습니다. ‘화를 내는게 옳지 않다’ 하시며 도와 주시려 하지만, 강제로 고치지도 않으십니다. 단지 하나님의 본심 ‘... 큰 성읍 니느웨를 어찌 아끼지 않겠느냐?’(11절)는 마음을 드러내십니다. 요나서 독자가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진심(주님의 자기계시)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복이 있습니다.

요엘, 아모스에서도 보았듯이 이 책 또한 open end입니다. 요나가 다시 회개했다든지, 떠났다든지, 니느웨가 잘 됐다든지에 관한 이 땅의 결과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요나서의 관심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니느웨에 대한 사랑을 강렬하게 나타내고, 니느웨가 돌아오도록 하는 데에 당신의 사람을 파트너로 사용하시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나서를 통해 받는 은혜의 도전은 요나(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고 싶다는 거룩한 소망입니다. 요나처럼 하나님을 잘 알고, 헌신하여 사역에 성공한 사람도 드뭅니다. 그 누가 복음을 전할 때에 도시 전체가 회개를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니느웨에 대한 주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할 뿐 아니라, 주의 자비와 은혜에 대해 화를 내고 있습니다.

<맺음>

내가 미워하는 한 사람, 어떤 무리, 국가가 진정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주님의 기쁨으로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온전히 인정해 드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요나를 통해 본 인간 본성의 한계를 은혜와 자비 안에서 넘어서는 반전의 기회를 맞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생각해 봅시다>

  1. 요나의 화를 낸 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2. 인간의 본성을 관찰할 때 주님의 크신 은혜와 자비를 온전히 받아들이려면 지금 내게는 어떤 것이 고려의 대상이 됩니까? 나의 본성의 어떤 면이 주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게 하는지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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