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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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에 나타난 사랑(5) "하나님은 당신에게 사랑이십니까?" (요일4:1-6)

작성자
손민석
작성일
2015-12-07 23:49
조회
1448
<도입>
인간이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들: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인가?” (철학자 칸트의 인간에 대한 네 가지 질문)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들은 답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부어주시는 사랑에 기초해서이다.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사랑.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사랑을 배워서 할 수 있다.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 사랑의 완성.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인간은 사랑 받고 사랑하는(해야 하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사랑에 대한 이해와 체험이다.
8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헬라어로 아가페) 필리아(형제 자매 간의 사랑)나 에로스(남녀 간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필리아나 에로스에 세속적 의미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1] 하나님의 사랑
구약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두 번 에로스라고 번역되었다(아가서, 70인역 번역서). 신약에서 필리아는 요한 복음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였다. 신약의 저자들은 사랑에 관하여 헬라어에서 잘 사용하지 않았던 아가페라는 단어를 선호했다. 그 이유는 인간적/세상적 차원을 넘어서는 사랑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표현하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에는 어떤 새롭고 본질적인 것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
그러나 기독교 진리가 에로스의 본래 의미를 무시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은 에로스와 상반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 속에도 에로스의 측면이 있다. 세속적이고 성적으로 타락한 에로스의 의미를 하나님 사랑에 담으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하나가 되고 싶어 하시므로 인간에게 끌리고, 또 인간이 하나님께 끌리기를 원하시는 차원에서 그러하다. 그래서 성경에는 하나님과 그 분의 백성을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나타낸다. (호2:19, 아가서 주제, 계19:9 ‘어린 양의 혼인 잔치’ 참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때, 마치 신랑이 신부에게 목 매달고 구애하는 것과 같이 찾아오셔서 사랑으로 호소하신다. 이러한 에로스적 사랑의 측면이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 지점은 완벽한 연합(divine union)이다. 매우 중요한 성경의 사상이다.
[2] 아가페와 에로스의 차이>
아가페는 ‘내리 베푸는 사랑’이다. 에로스는 찾고 구애하는 사랑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 오신 이 사랑에 감동과 설득되어 그 사랑을 스스로 택하고 받아들이면, 그 때부터 그 분의 생명 안에서 넘치며 흘러 내려오는 사랑을 받게 된다. 이것이 아가페 사랑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이 넘쳐서 백성들에게 흘러 내려오는 사랑을 롬5:5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말했다. 에로스는 찾고 구애하고, 상대와 깊이 연합하고자 하며, 그를 자신 안에 소유하고자 하는 측면을 가진다면, 아가페는 이 세상 어디서도 완벽하게 보기 힘든(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에서 부분적으로 비추이는) 내리 붓는 측면을 말한다. 그래서 신약 저자들은 하나님 사랑을 아가페로 표현한 것이다.
[3] 아가페 사랑의 목적
아가페 사랑을 통하여 무엇을 이루시고자 하는 것일까? 하나님으로부터 넘치는 생명의 힘으로 인간과 세상을 완성된 사랑의 결정체로 만드시고자 하는 것, 이 땅 위에 천국을 완성하고자 하시는 것이다. 그 사랑을 받는 나 또한 사랑하도록 초대받는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사랑의 빛 아래서 사물과 대상을 새롭게 봄으로써이다. CS Lewis, “우리는 빛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빛에 반사되는 대상을 보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모든 피조계에 침투되어 계시므로 그 분의 생명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나는 파노라마를 감동 속에서 볼 수 있게 하는 빛은 사랑 받고 사랑 함으로써 얻어진다.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다(요8:12). 그래서 예수님이 당신의 사랑의 생명의 의미를 가지고 비추며 다가가시는 모든 대상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모든 사랑의 대상 됨을 분명히 볼 수 있는 눈을 갖는 것이다. 하나님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순종하는 자나, 거부하는 자나 다 사랑하신다. 그러나 믿고 순종하는 자는 각자 자기 사랑의 행위에 따른 평가와 상을 받게 될 것이다. 믿지 않고 하나님 사랑을 거부하는 자는 사랑도 배울 수 없고, 하나님 나라에서 얻을 것이 없다. 그러나 지금도 하나님의 사랑의 빛 가운데 모두는 활짝 열려있으며, 하나님은 그들이 나아오기를 기다리실 것이다.

<토의와 질문>
1. 지금까지 에로스 사랑에 대해서 어떤 관점을 가졌습니까?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에로스 사랑은 어떤 측면에서 나타납니까?
2.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에 대해 당신이 체험한 바를 말씀해 보십시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 나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나누어 보십시요.
3. 하나님의 생명은 사랑입니다. 사랑에서 떠난 하나님의 생명력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체험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계의 창조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습니다. 인간과 자연이 모두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임을 알고 있다면, 당신은 사람과 자연과 같은 피조계에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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