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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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새(2) 성령의 후폭풍의 사역(사40:6-8)

작성자
손민석
작성일
2015-12-07 23:54
조회
1618
2. 성령의 후폭풍 그리고 은혜 (사40:6-8) [254(내 주의 보혈은), 182(강물같이 흐르는 기쁨)]
[1] 시들게 하는 성령의 사역
- 챨스 스펄젼(19세기 복음주의 설교자)의 말한 “성령의 후폭풍”이라는 비유적 표현을 먼저 살피겠습니다.
포격 무기 중에 무반동총이 있는데, 그것은 대포와는 달리, 발사될 때 반동이 없는 대신 포 뒷면으로 불과 후폭풍을 뿜어낸다고 합니다. 그러면 후폭풍에 맞은 들판의 풀들을 이내 말려버린다는 것입니다. 포 앞으로는 포탄이 날아가고 뒤로는 후폭풍이 나가는 모습이, 마치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방향으로는 풍성케 하는 성령의 생명의 힘이 분출되지만, 반대방향으로는 시들게 하는 성령의 후폭풍과 같을 것입니다.
스펄젼 목사는 오래 대망하던 구원과 회복 역사가 이스라엘에 임하기 전에 오늘 본문 이사야서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영적으로 풍성케 하기 전에 육신에 속한 것들을 시들게 하는 성령 사역에 관하여 설교 했습니다. (복사본 참고)

[2] 육적 그리스도인(고전3:1-3)
- 성도가 된 후에도(=성령께 속한 사람이 된 후에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한시적으로 또는 고질적으로 육적 특성이 많이 나타납니다. 이런 육적 성향들은 성령의 후폭풍으로 시들어져야 합니다. 육적이라는 말은 마음의 근본적인 추구, 애착, 끌림과 관련이 있습니다. 내게 있는 육적 특성은 무엇입니까? 크게는 하나님과 전반적으로 대항하고 있는 성향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작게는 나의 한 가지 습관이나 성품이 성령을 거스르는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관계를 건강하게세우지 못하는 말 한마디, 쉽게 판단/정죄하는 습성, 정욕을 다스리지 못함…
이런 육적 특성은 (어제 언급한) 영적 목마름과는 전혀 관계없고, 오히려 자기 방식대로 목마름을 해소하고자 하는 인간적 추구입니다. 대개 육적 소욕이 영적 소욕보다 강하면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열심마저도 세속적 욕망을 충족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예로서 고린도 교회가 영적인 은사에 대한 열심과 추구가 있었지만 자기 과시욕의 은밀한 발로일 수 있었고, 파당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육적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영적으로 열심이 있어도 삶과 인격에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시금석입니다. 은사체험이 있을지라도 그러합니다.
한국 교회에 만연한 기복신앙, 번영신앙, 성장제일주의, 물량주의는 목회자와 교인들이 신앙이라는 명분아래 은밀히 육적 소욕을 추구한 삶과 사역의 산물이라고 해도 거짓이 아닙니다. 육적 그리스도인들은 성령께 지배를 받지 않아도 크게 불편함이나 부족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토저 목사(A.W. Tozer) “하나님께서 어느 날 우리 교회에서 성령을 거두셔도 우리는 별 차이를 못 느낄 것이다”
- 바로 우리의 육적 성향들이 성령을 근심케 하고(사63:10, 엡4:30), 성령을 소멸합니다(살5:19). 이것이 성도들에게 만연할수록 우리는 영적 둔감증에 빠지게 되고, 결국 우리의 영적인 생명이 훼손되어도 위기를 못 느끼는 처지까지 빠지게 합니다. 성령의 근심과 성령을 소멸하는 사건은 우리에게 매우 일상적이고 편만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3] 영적 광야로 몰아가신다!
- 그러면 이러한 성도의 영적 상태를 주님께 어떻게 의탁해야 하겠습니까? 스펄젼 목사가 지적한 대로 성령의 후폭풍을 의지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최후의 일격을 인정하고 우리의 교만을 깨뜨리시도록 자신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성령의 후폭풍은 우리는 결국 십자가로 인도하십니다. 모든 시련과 연단은 우리를 변화의 길로는 인도하지만, 근본적으로 새롭게 하지는 못합니다. 결정타는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 사랑의 힘뿐입니다. 십자가는 영문 밖에 있습니다. 말하자면 광야입니다. 영적 광야로 내몰려 영적 메마름을 처절하게 맛 본다면, 인간적으로는 매우 아프고 처절하게 느껴지겠지만, 영적 풍성함으로 나아가는 소중한 영적 회복의 기회를 가져올 것입니다.
영적 광야에서 무력함과 곤고함과 어두움을 발견하게 하시고 깊은 내면에 은폐해 있는 사악한 죄성을 들여다보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육적 탐욕과 교만과 인간적 열정이 타버립니다. 그러므로 광야는 성령의 후폭풍에 강타되는 곳이지만 진정한 자아발견이 일어나고, 육적 성향이 제거되어 비로소 성령과 인격적인 동행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에서 이렇게 육신의 힘이 빠지고 성령의 힘으로 강해지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의 육적 성향이 성령의 후폭풍에 맡겨지는 거룩과 은혜의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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