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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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새(6) 성령 하나님의 임재와의 만남(시34:8; 롬5:5)

작성자
손민석
작성일
2015-12-07 23:57
조회
1791
이번 주간에 성령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관하여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성령님은:

(1) 목마름을 채우시되 더 깊은 목마름으로 인도하신다. 영적 목마름의 지속적인 삶으로 부르신다.

(2) 육신의 생각과 행실을 성령의 후폭풍 역사로 시들게 하신다.

(3) 참 회개로 이끄신다: 마음의 전향과 몸의 행실의 변화를 동반한다.

(4) 본질의 소중한 가치를 발견함으로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게 하신다.

(5) 창조와 구속의 영으로서 인간을 하나님과 만물과 교통하게 하신다.

오늘은 어떤 정서 안에서 성령 하나님과의 만남이 중요한가를 살피면서 특새를 마무리하겠습니다.



[1]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태양은 절대적 존재입니다. 이 지구 어디에 있든지, 빛은 틈만 있다면 어떤 좁은 공간이라도 침투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빛 자체는 태양이 아닙니다. 그 빛의 본체인 태양은 멀리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본체는 또한 가깝게 있습니다. 이같이 생명의 원천인 하나님은 그가 원하는 곳 어디에나 성령으로 함께 하십니다. 거기서 우리는 성령님을 생명 주시는 분으로, 위로자로 만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임재는 우리 내면의 어떤 깊은 구석에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인격적으로 임하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나의 반응을 매우 존중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만일 어떤 이유에서든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은 그 만남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연기하십니다. 그 만남을 연기하시는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울지를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 마음이 아프셔도 몰라드릴 수 있습니다. 언제 그럴까요? 우리가 미숙한 상태이면 그렇습니다. 자녀가 성숙하기 전까지는 결코 자신이 부모를 어떻게 아프게 했는지 감을 잡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늘 인간과 세상에 함께 하시며 품고 계시기 때문에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어떤 틈새라도 열리면 들어오는 은혜의 빛은 심령을 비추어 하나님을 만나게 하십니다. 인격 대 인격으로 만남이 이루어지면 인간에게 크게 일어나는 일차적 변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감동입니다.



[2] 영적 감각: 이성인가, 감성인가?

전통적으로 기독교 신앙에서 이성은 성령의 조명을 수용하는 통로로 생각해 왔습니다. 객관성과 합리성이 받쳐 주지 않으면 결코 바르게 신앙이 세워질 수 없다고 동의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독교의 합리주의 전통에서 감정은 충동적이고 저급하고 불안정한 것(육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이성을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성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이성으로 하나님의 깊은 신비를 다 파악할 수 없고 또 이성을 또한 왜곡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감정이 신앙을 다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서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알자, 힘써 알자”(호6:3) 라고 할 때 ‘안다’라는 말은 합리적 이성으로 정보를 수집하여 알게 된 앎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감정과 체험을 평가절하하면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특히 앎의 대상이 살아있는 인격일 때 감정은 중요한 앎의 기능을 감당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가슴으로, 체험 속에서 부딪히고 아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이후로 살아있는 하나님과의 사귐이 지속됩니다.



미국 대각성 운동의 주역인 조나단 에드워즈 “지적으로는 교리에 대해 아주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 교리가 지니고 있는 거룩함의 아름다움은 전혀 맛보지 못할 수 있다. 지적으로, 즉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영적으로, 즉 가슴으로는 모르는 것이다. 교리에 대한 단순한 지적 이해는 마치 어떤 사람이 꿀을 보고 만져 보기는 했지만 맛을 보지는 못한 것과 같다. 영적 지식을 가진 이는 꿀의 달콤함을 직접 맛본 자와 같다” 그는 종교적 감성이 신앙의 핵심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21세기에 우리와 같은 성도들도 겸손 안에서 감동체험의 위력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하나님 임재를 체험하는 가정이나 교회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문균 교수, “사람들은 생명의 힘을 느낄 수 없는 교회를 떠나서 갖가지 미신적인 점술이나 뉴에이즈의 종교적 감성에 빠져든다. 생명의 힘을 상실한 교회는 더 이상 사람들의 매력을 끌 수 없다.” 서구에서는 교회를 떠나는 이들 수가 급증하는 반면 교회 밖에서 영적 체험을 추구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주요 원인은 교회에서 진정한 체험을 할 수 없고, 매우 지루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동체험에도 함정이 있습니다. 감각적 만족을 위해 더 자극적이고 영적으로 고조되는 감정에 중독되는 것입니다. 감정만족을 위한 감정 추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느 새인가 우리에게 외면 당하여 옆으로 밀려있게 됩니다.



[3] 감동체험의 시금석

열매로 평가 됩니다. 말하자면 감동체험과 열매 맺음은 한 세트로서 취급되어야 합니다. 교회 영적 부흥 시기마다 종교적 열정이 고조되면서 두 가지 엇갈리는 논쟁이 계속되었습니다. 한 쪽에서는 감동체험만 있으면 성령 체험으로 무비판적으로 수용했고, 또 한 쪽에서는 일종의 히스테리 현상으로 일축해버렸습니다. 에드워즈에 의하면 이 상황에서 사탄의 전략은 우리를 양극단으로 치우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 인간을 교묘하게 혼동시키는 거짓 감정을 부추겨 광신적 혼란을 야기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어제 설교에서 사탄은 인간을 왜곡시키는데 능숙하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럼 하나님을 감동 속에서 만나면 어떤 열매가 시금석의 핵심입니까? 사랑입니다. 성령은 사랑의 영입니다(롬5:5). 모든 영적 체험의 중심에는 사랑의 강렬한 체험 속에서 그것이 성령의 역사임을 확신하고 고백합니다. 이 사랑은 기쁨을 동반합니다. 기쁨은 감성이 아니라(즐거움과 다름), 활력있는 생명의 표현입니다. 나의 생명이 하나님 사랑에 의하여 압도되고 지배될 때 그 생명은 기쁨의 특징을 가진 힘이 됩니다. 그래서 느8:10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맺음> 이번 주간에 성령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해 말씀 드렸지만, 오늘 말씀 드린 것처럼 그분을 새롭게 만나는 신앙의 체험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늘 있을 수도, 앞으로 분명히 있기를 바라는 가운데 성령하나님의 임재와의 만남, 그리고 그분을 통해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가 날마다 더 풍성해지기를 바랍니다. 교회 모든 성도님들에게 소중한 성령 체험의 선물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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