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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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큰 숲 보기 (33) - 스바냐 : 여호와의 날에 (습3:16-20)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10 20:19
조회
181
성도의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누림은 주님의 뜻을 사모하고 따르는 가운데 열리는 새로운 생명의 차원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세상의 패러다임을 따르면 예수님을 믿고도 좋은 결과물과 효율성에 천착하지만, 신앙은 주님과 동행하는 여정자체가 귀한 가치임을 알게 하며, 결과보다도 과정 속 의미를 발견할 때 형용 못할 내적 축복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셨고, 앞서 그리스도의 길을 내다보며 살았던 선지자들은 무엇을 보았으며, 여호와의 날(종말)을 맞이하는 것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전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스바냐서의 흐름과 메시지

1장을 보면, ‘여호와의 날’이 키워드입니다. 그 날은 종말(그리스도의 초림~재림)을 의미하며,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는 때라는 뜻입니다. 이에 여러 표현이 나옵니다.

7,14절 - 심판하시는 날
8절 - 제물을 잡는 날
15,18절, 분노하시는 날
16절, 나팔이 울리고 전쟁의 함성이 터지고 견고한 성읍과 높은 망대가 무너지는 날

- 모두 심판을 행하시는 날을 말합니다

왜 심판을 하시는가:
5-6절 –> 주를 섬기면서도 밀곰(우상)에게 맹세하고, 주를 등지고, 아무것도 여쭙지 않기 때문
9절 -> 폭력과 속임수를 써서 신전을 가득 채웠기 때문

2장으로 넘어가면, 주변 국가들, 즉, 가사, 아스글론, 아스돗, 에그론, 그렛, 블레셋, 모압, 암몬, 에티오피아, 앗시리아에 관한 심판을 예고합니다.

3:1-13– 남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을 경고(3:1-2 참고)

반면, 백성들을 위한 회복의 말씀도 주십니다 - 9, 12-13절

그리고 스바냐서 흐름의 마지막(3:14-21)은 하나님이 백성들을 크게 사랑하고 기뻐하신다는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본서에서, ‘여호와의 날’의 심판을 통하여 주님을 드러내시지만, 사랑/기쁨의 구원을 통하여 당신을 드러내시기도 한다는 두가지 사실을 보게 됩니다.

[2] 선지자가 본 하나님의 진노와 사랑

다른 선지서에서도 그렇듯이 심판 메시지를 보면 부정적 표현과 의미가 강렬하여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를 느끼게 합니다. 그런데 스바냐서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갑작스러운 사랑의 고백이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선지자는 진노와 사랑을 어떻게 이렇게 밀접하게 붙여서 말할 수 있을까? 묻고 싶은 질문입니다. 이것에 대해 선지자는 어떻게 이런 직관적 선포를 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 헤셸은, 선지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이론이나 관을 갖고 있지 않고, 이해만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당황하고 쩔쩔매게 하는 임재였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을 밝히려는 탐색자가 아니라 말씀에 얻어맞은 증인으로 살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설명하지 않고, 하나님의 태도를 증거하고 밝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월터 브루그만은, 하나님은 두려움과 공포가 아니라며 부인하고 억눌러왔던 것을 선지자는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소명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두려움과 공포를 표현할 때 분석적, 강압적인 언어가 아니라 은유적인 언어를 사용합니다.

예: 1:18, 3:8 ‘질투의 불로 소멸하리라’
1:15 ‘먹구름과 어둠이 뒤덮이는 날’

말하자면 선지자는 여호와의 날(종말)에 행하실 것들을 직관적 언어들로 선언하고, 그 날에 인간은 스스로 설 능력이 없다는 것 또한 말해줌으로써 마땅히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회개) 말하고 싶은 목적을 갖습니다.

선지자들은 이성과 논리가 아니라, 심판과 파멸에 관한 것과 질투로 표현되는 주님의 사랑을 직관적이고 열정적으로 공개합니다. 일반적 기준으로는 심판과 사랑은 상반되어 함께 말하기 힘들지만 그들에게는 이 둘을  함께 보는 한 덩어리 속의 두 단면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사고와 논리를 앞세우는 현대인들에게 어렵게 느껴지지만, 선지자들을 공감하는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찾으려는 탐색자가 아니라, 한 말씀에라도 얻어맞는 증인이 되고 싶은 가운데 선지자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궁극적으로 스바냐가 전하는 하나님의 바람은 무엇일까요?

2:3(읽음) ‘겸손한 자들, 주님을 찾아라, 올바로 살도록 힘써라, 겸손하게 살도록 애써라... 화를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3:12(읽음) ‘주의 이름을 의지하는 온순하고 겸손한 사람들을 남길 것이다’

이것이 사람의 살 길이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의지하며 겸손과 온유를 회복할 때 참으로 우리를 살게 하는 축복의 통로라는 사실을 숙고하게 합니다.

<맺음>

이미 경쟁과 성공의 사회 속에서 빠진 가운데에서 살아남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을 이차적 문제로 제쳐 두는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선지자의 하나님 이해를 통해서 종말에 우리는 주의 은혜로만 설 수 있음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최상의 사랑의 존재로서 복된 길을 날마다 걸어가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생각해 봅시다>

  1. 선지자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무엇을 보고 경험했을 지, 위에서 말한 두 학자의 말을 참고하여 생각해 보세요.

  2. 내가 주님 앞에 서는 일은 지금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여호와의 날(종말)에 이미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재림 때에 주님 앞에 설 때에 주님은 나의 어떤 모습을 기뻐하실 것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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