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 자료

목양 자료

성경의 큰 숲 보기 (35) - 스가랴 : 새 예루살렘과 성전의 회복”(슥4:6-10)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24 11:08
조회
175
학개서와 같은 시기와 배경을 가진 스가랴서는 성전의 회복과 더불어 새 예루살렘의 회복을 약속하는 내용을 담습니다.

 [1] 여러 환상들의 목적

1-8장에 걸쳐 여러 환상들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선 사람으로 시작하여 순금 등잔대와 두 올리브 나무 등... 이것을 통해 성전과 예루살렘의 회복을 이루신다는 말씀을 주시며, 동시에 포로로 잡혀간 까닭도 밝히십니다(7:9-11, 자비와 관용을 잃음). 하나님을 믿는 삶의 핵심을 잃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망한 이유가 바빌로니아가 너무 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관용과 자비가 없고, 가난한 사람을 억누르고 동족끼리 해치는 것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노하셔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지 않아서 망했다고 하십니다(7:13-14). 우리 또한 나의 삶이 잘 안 풀릴 때, 바른 진리 위에 서 있는가를 성찰하지 않고, 타인과 환경 속에서 원인을 찾습니다.

8:2부터 보면 진리 위에 사는 삶이란 시온에게 부으시는 주님의 열렬한 사랑을 먼저 받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내게 관용하고 자비를 베푸는 힘을 주는 지가 핵심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삶에서 실천되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생각하긴 하지만 믿지는 않는 것입니다.

삶의 문제들이 터질 때, 내면의 어둠과 허무를 느낄 때, 나는 누구이며, 창조와 구원의 의미가 혼동스러울 때 진리에서 이탈하는 이유는 주님의 큰 사랑을 알지라도 내면화와 실제화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주님은 주변 존재로서 내 안에서 역사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약해서 망한 것이 아니라 진리를 행하지 않아서 망했다는 지적과 함께 예루살렘과 성전의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그래서 스가랴서 초두인 1:3-4에서 ‘돌아오라’는 말씀으로부터 발전되는 메시지를 찾는 것은 중요한 작업입니다.

 [2] 회복의 메시지

읽을 구절: 2:4-5, 11-12; 8:3, 7-8

이 말씀을 문자대로 적용하여 Back to Jerusalem같은 운동을 지지하면 안 됩니다. 세상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이면 회복되고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믿는 것은 예수님의 구속의 성취와 맥이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형적 예루살렘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됩니다. 스가랴 때 예루살렘을 물리적으로 회복시키시는 목적은 모이는 것을 넘어 진리에 입각한 삶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에서 참 공동체의 삶을 구현하기 위함입니다.

이 공동체적 삶은 에덴에서 이미 계획되었지만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무산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것의 회복을 항상 포기하시지 않았고, 스가랴 때에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참 사랑과 진리의 공동체적 삶을 살아내는 회복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계21:2 ‘나는 또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새 예루살렘은 지상 교회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지상에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예수님과 하늘에 함께 앉아있는 교회의 하늘의 정체성(엡2:6)이 비로소 땅의 교회와 포개어져 진정으로 완성된 교회를 이룰 것이라는 뜻입니다. 비유한다면, 성도가 땅에 살면서 하늘의 정체성을 가진 것처럼(빌3:20), 교회 또한 하늘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늘에 합당하게 완성되어질 모습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스가랴서에서 새 예루살렘의 회복은 진리의 공동체적 삶이며 성전의 회복은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임재입니다. 태초에 꿈꾸신 에덴의 회복을 이루시려는 것입니다.

[3] 회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영

이 일은 성령으로 이루어집니다. 4:6, “힘으로도 되지 않고, 권력으로도 되지 않으며 오직 나의 영으로만 될 것이다” 그러면 성령은 어떤 특징을 갖습니까?

7절. 성전을 지을 때 스룹바벨이 머릿돌을 내오면 그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외칠 것입니다. 감동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8-9절. 이 일을 마칠 때, 4장에 등장하는 천사를 보내셨음을 알게 할 것이다. 성령을 통해서.

10절. 스룹바벨이 측량추를 잡으면 기뻐할 것이며, 이 일곱 눈은 온 세상을 살피는 주의 눈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일곱 눈은 4:3에서 언급한 일곱 등잔이며 성전과 세상을 밝히는 일을 합니다. 일곱 등잔, 일곱 눈은 성령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일곱 등잔을 일곱 영, 즉, 성령으로 말합니다(계4:5).

성령은 늘 인격적으로 역사하셔서 자원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격려하십니다. ‘오직 나의 영으로 된다’는 뜻은 힘이 아닌 인격적 사랑으로 창조의 목적을 이루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과 성전이 회복되는 축복은 성령의 역사로 가능하며 오늘 날 성령은 하나님 임재 가운데 참 공동체를 이루는 사랑과 배려와 자비의 삶을 사모하고 자원하게 하십니다.

우리 교회 또한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진정한 사랑과 자비의 공동체적 삶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풍성하기를 축원합니다.

<생각해 봅시다>

  1. 스가랴 시대에 중요한 이슈였던 새 예루살렘과 성전 회복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2. 오늘 날 우리 교회 안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위의 글을 참고하여 내가 느끼는 바를 말씀해 보십시오.

전체 0